중학교 때 친구들은 다 S, K, Y 대학을 가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.
고등학교 다니면서 목표들이 in-Seoul로 낮아지더니
3학년이 되면서 여러학교 여러학과를 가야하는 이유를 찾더라구요.
그리고 수능을 치루기 전날 쯤은 모두가 “아무데나 보내 주시면 감사”,
수능을 치고 나선 “인간이 왜 대학이 필요한가?”로 바뀌어 가더군요.
농담삼아 했던 말인데
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도 점점 그렇게 되어 가더군요.
현실에 부딪치고
내 한계를 알아가고,
그러면서 더 중요한 가치에 대해 물으면서
어른이 되고 성장해가는 중에 있었단 걸
나중에야 알았습니다.
그러고 살았는데
이제 내 아이가 고등학교 시니어가 되었습니다.
보통 아빠들처럼
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 혹시 천재가 아닌가 생각했던 적도 있었고
예술적 소질이 있지나 않을까 살피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.
결국, 중학교 때 가지고 있던 학교 이름 리스트에서
하나씩 둘씩 지워가다가
“인간에게 왜 대학이 필요한가?”를 다시 묻고 있습니다.
학교도, 지역도,
그리고 전공도
아이를 위한 기도에는 별로 남아 있지 않네요.
이제 남은 기도와 소원은
입학할 때 보다 졸업할 때는 더 예수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
아이의 뾰족한 부분은 다듬어지고
낮은 곳은 메워질 수 있도록 훈련 받을 수 있는 곳에
보내질 수 있기를 ….
어쩌면 아이 뿐 아니라 나도
더 중요한 것을,
더 오래 가는 것을,
찾으며 부모로 여전히 성장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.
예수님의 제자 중에
예수님이 성공하면 오른 팔과 왼 팔로 써달라고 어머니를 통해 청탁을 넣었던 이가 있습니다.
요한이란 청년이 이었는데요.
이 야심많던 청년이 나중에 나이 먹고, 한90세쯤 되었을까요?
많은 이들을 향해 말씀을 전합니다.
“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
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”(요일4:11)
성공을 찾던 청년 요한은 그렇게 하루하루 성장하여 “사랑의 사도”가 되었습니다.
우리는 대부분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.
지금 학교에 있는 가족들도 곧 마치겠지요.
그러나 이사도 하고, 아이도 자라고,
직장도 바꾸고, 운동도 하고 …
더 많이 하겠지요.
그러면서 계속 성장해 갔으면 좋겠습니다.
이 세상에서 변치 않는 우리의 가치는
그리고 죽을 때까지 잡고 있어도 좋을 목표는 예수입니다.
바쁜 날들이 쌓여
우리도 예수님같은 사람이 되어 갔으면 좋겠습니다.
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…
편지쓰는 사나이 김목사 드립니다.